주일설교(2016/6/19) - 산상복음(45)
비판하지 말라(2)
마태7:1-5 45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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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에게 주시는 신앙생활의 교과서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들에게 주는 삶의 길잡이입니다. 삶의 안내자요, 인생의 길 인도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믿지 않는 비기독교인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믿고 받아드릴 때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세상의 일반적인 책과 같은 것으로 보면,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은혜가 임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일반적인 책과 똑같이 취급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가오지를 않고, 성경의 비밀이 열리지를 않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산상복음(마5-7장)을 전하시면서, 이 산상복음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믿지 않는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산상복음은 성경전체의 요약이며, 기독교의 핵심 교리요, 기독교의 핵심 윤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전하시면서, 기독교인은 세상과 달라야 하며, 기독교인은 세상을 변화시켜야 하며, 세상의 잘못에 대해 대항해야 하며, 오히려 세상을 향해 ‘이렇게 살아야 한다.’ 라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산상복음은 예수님의 선언서와 같습니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기독교인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친히 설명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독교인들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세상의 방식으로 살지 말고, 전혀 다른 가치관과 생각으로 살 것을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은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을 좀더 깊이 있게 다루기를 원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비판하지 말라”라고 하십니다. 왜 비판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예수님이 비판하지 말라고 하시는 네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이 네 가지의 이유를 염두해 두고 비판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비판”krivma(크리마)은 결정, 판결 decision, 심판 judgment 의 뜻으로, 어떤 심판자에 의해서 ‘결정, 판정, 심판, 선고, 처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성경에서는 법정에서 재판한 후의 결과에 대한 용어로도 사용되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최후의 심판의 의미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비판” 이라는 말은 “심판, 판결, 처벌”이라는 의미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비판하지 말라” 고 하십니까? 네 가지 이유 중에, 첫 번째 이유는,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실제적인 이유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너희를 비판하는 것을 싫어하거든 너희도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다른 사람들에게 비판받고 싶지 않거든 그들을 비판하지 말라.“ 라는 것입니다. 그 의미는,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는 그대로 그들도 너희에게 행할 것이다. 혹은 너희가 보복을 당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비판하면 그 만큼 다른 사람으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가 다른 사람을 혹독하게 혹평하고 있을 때, 어느 구석에서 다른 사람이 나를 혹독하게 혹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항상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혹평하는 사람은 항상 자기에 대해서 비판하도록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다른 사람을 늘 비판하는 사람은 자기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에게 비판이 가해질 때, 아주 싫어하며 민감하게 반응하며, 더 심하게 상대방을 비판하며, 폭언을 늘여 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이 다른 사람을 비판할 때는 이 점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 안에는 체질적으로 비판이 많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구원관이나 자기 의(義)에 대한 확신이 분명하면, 자기는 완전히 의롭고, 다른 사람은 의롭지 않고, 자기는 확실히 구원 받았고, 다른 사람은 구원관이 희미하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에,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비판하기 쉽습니다.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자기의 의(義)가 최고이고 다른 사람의 의(義)는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경향이 많이 일어납니다. 교인들의 잘못된 습관 중에 하나가 내 의(義)의 기준에서 항상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현대인들은 내 기준에 맞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 비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다 이런 습관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는 다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다가 보니, 교회에서도 내 마음에 안 들면 비판합니다. 설교를 들으면서도 내 마음에 안 들면 비판합니다. 교회의 여러 일에도 내 마음에 안 들면 비판합니다. 목사님을 비판하고, 장로님을 비판하고, 교인들을 비판합니다.
특히 교회를 많이 옮겨 다니는 사람들, 이 교회, 저 교회를 많이 옮겨 다니면서 여러 목사님들의 설교를 많이 들어서, 귀만 크게 키운 사람들은 설교를 비판하는 눈이 높아져 있습니다. 이 분들에게 은혜가 없습니다. 은혜에 메말라 있습니다. 어떤 말씀에도 은혜를 못 받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내가 비판을 받을 때는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롬14:4)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14:10)
여러분 우리는 남을 비판하지 마십시다. 교회를 비판하지 마십시다. 목사님들을 비판하지 마십시다. 교인들을 비판하지 마십시다. 할렐루야!
비판은 나의 은혜를 다 잃어 버립니다. 마귀에게 이용당하게 됩니다. 할렐루야!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말하면, 성경구절을 들이대면서 반발하거나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한복음 5장 24절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했는데, 하나님은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심판하지 않습니다. 또 로마서 8장 1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라고 했는데, 우리 믿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비판)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믿는 자는 심판받지 않습니다.“ 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부정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지 않습니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주신 이 말씀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주시는 말씀이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6-37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라고 분명히 여기서는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이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비판(심판)에 대해서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비판(심판)에 대해서 세 가지 종류의 비판(심판)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해서 꼭 집고 넘어가겠습니다.
우선 첫째는, 최종적인 영원한 비판(심판)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사람의 신분, 또는 그의 위치를 결정해 주는 비판(심판)입니다. 이것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양과 염소, 영광으로 들어가는 사람과 멸망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나누는 심판입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요한계시록 20장 11절에서는 “흰 보좌 심판” 또는 “최후의 심판” 이라고 했습니다(11-15). 이 심판은 그 사람이 천국에 있게 되거나, 아니면 지옥에 있게 되거나 그 사람의 최종 운명이 그의 영원한 상태로 결정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둘째 비판(심판)이 있습니다. 둘째 비판(심판)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순종해야 하는 비판(심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멸망의 길로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지옥불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인 기독교인들에게만 내리시는 심판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7-29절을 읽어 보십시다.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라고 한 후,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30)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초대교회 때는 주님의 몸과 피인 떡과 포도주, 즉 성찬예식의 떡과 포도주를 합당하지 않고, 욕심을 내어서 배불리 먹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마음대로 죄 짓고 살다가 교회에 와서 성찬예식 때 떡과 포도주를 회개하지도 않고, 배불리 먹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몸이 약해지거나, 병들거나, 아니면 죽는 자가 적지 않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벌을 내려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벌을 내리시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셔서 영혼을 지옥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내리시는 징계, 또는 벌은 하나님이 그 영혼을 구원해서 지옥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벌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32절에 『우리가 판단(심판)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말씀이 고린도전서 5장에 또 있습니다. 『(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 도다 (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교회에는 바울이 다른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동안에, 어떤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자기 아버지의 첩을 취하는 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교회를 분란을 일으키고, 바울을 대적하는 짓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도했습니다. 그 몸을 죽음에 내 주고, 그 영혼은 주의 날에 구원 받게 해 달라고 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 죄 때문에 몸은 죽었지만, 영은 구원 받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는 기독교인들 가운데 그들의 악한 생활 때문에 죽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심판(비판)이 그들에게는 그런 모양으로 임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이런 심판이 없을까요? 하나님이 자기 자신들을 판단하는 것을 거부하며,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는 사탄에게 내어 줄 것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도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주의 날에 영혼만은 구원시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판단(심판)을 피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늘 돌아보아야 하며, 내 스스로 나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예수 믿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비판(심판)이 나와는 관계가 없다. 만사가 OK이다.’ 라고 경솔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6,8절에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고린도전서11장 32절에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비판(심판)은 “보상의 심판”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상급 심판”이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천국에 들어가서 받는 심판입니다. 면류관을 받는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특별소유가 되는 심판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톨스토이가 말한 대로 “자기 집에 들어가는 것은 자기 집 열쇠 하나면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의 상급은 “회개의 합당한 열매” “주를 위한 선한 행실”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열매는 하나님 앞에서 참 그리스도인이었다 라는 증거요, 상급을 받는 증거입니다. 말라기 3장 16-18절에 보면,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한 자를 분별하여, 섬긴 자를 하나님의 “특별소유”로 삼고 “기념책”에 기록하신다 라고 하십니다.
로마서 14장 10절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 가서 반드시 보상의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가 비판하지 말아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비판함으로써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한 비판을 만들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 스스로 비판을 받을 표준을 설정해 주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비판하면 그 비판한 기준이 잣대가 되어, 그 기준에서 그대로 비판을 돌려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항상 보복을 받기 마련입니다. 내가 보복하면 보복을 받고, 내가 비판을 하면 그 비판한 잣대로 그 비판의 수준만큼 그대로, 비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비판의 포문을 열었으니, 그 만큼의 강도와 수준으로 비판의 총알이 나를 향해 정조준 되어 돌아 온다 라는 것입니다. 내가 비판한 그 기준이 나를 향해 비판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비판하지 말아야 하는 네 번째 이유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판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비판할 능력도 없고, 비판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일체의 비판을 시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판의 권리가 없다’ 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 4절에서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이 말씀은 주님이 우리의 속을 들여다보고 계시는데, 우리 속에 들보가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네 눈 속에 들보가 있기 때문에 밝히 보지 못한다.’ 고 하십니다. 우리의 약점입니다. 인간은 밝히 볼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상태가 이런 상태라는 것입니다. ‘너는 네 눈 속에 들보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티를 보지 못한다’ 는 것입니다.
들보는 ’통나무‘를 말하고, 티는 작은 ’먼지‘를 말합니다. 인간은 다 자기 속에 통나무가 있는 것입니다. 통나무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꼭 비판하고 싶거든 네 눈에 통나무를 빼고 비판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 속에 통나무를 안 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맹인 안과의사’가 다른 사람의 눈 속에 티를 빼낼 수 없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안과 의사’라도 맹인이기 때문에 치료를 못하는 것입니다. 내 속에 통나무가 있는데, 다른 사람을 비판한다고 치료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비판은 다른 사람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치료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너 자신을 돌아보라’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네 눈 속에 통나무나 열심히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오히려 내 자신에게 비판 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비판받고, 더나아가 하나님께 비판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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